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란트 재무장 (문단 편집) == 각국의 대응 == 독일에 대한 대비 때문에 거금을 들여 국경지대에 [[마지노선]]까지 구축한 프랑스가 독일군이 국경 너머에 나타나는 일을 반가워할 리 없었다. 그러나 군 수뇌부에서는 절망적인 보고를 했다. 총참모장 [[모리스 가믈랭]] 장군은 수뇌부의 의견을 종합하여 '''[[대공황]] 이후 국방예산 삭감으로 프랑스군은 크게 약화된 반면, 독일군은 질적으로 숫적으로 크게 증강되어 우리보다 우세에 있다'''는 독일군을 과대평가하는 결론을 내렸다. 1937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때도 개판이었으니 1935년 독일 국방군은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딘 아기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프랑스군 수뇌부는 기존 군사동맹국과의 공동 대응을 고려했지만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 침략 전쟁의 마무리에 골몰하고 있었고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는 1921년의 프랑스-폴란드 군사동맹을 준수하겠지만 프랑스 본토가 침략당했을 경우를 약정했기 때문에 독일 대사에게는 프-폴 군사동맹 조약이 발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프랑스 대사에게는 프랑스와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외교적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는 로카르노 조약에서 배제된 바가 있다. 따라서 로카르노 조약 위반인 라인란트 재무장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반대할 명분도, [[1934년]]의 독폴 불가침조약으로 인해 뚜렷한 이유도 없었던 것.][* 어처구니 없는것은 훗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프랑스는 독일이 내 땅에만 안오면 됨 하고서 독일 영내로 진주하다 바로 국경 지대로 돌아가며 폴란드를 사실상 버렸다.] 다른 프랑스의 동유럽 동맹국인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 왕국|유고슬라비아]] 또한 비슷한 논조였고 오직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만이 프랑스의 라인란트 진입시 같이 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그래도 프랑스 정부는 어떻게든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려고 했으나 군 첩보부가 라인란트에 투입된 독일군 병력을 '''30만 이상'''으로 오판하는 바람에 의지를 상실했다. 군사행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직 청년 인구의 3분의 1이 갈려나간 1차대전 [[참호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곧 있을 프랑스 총선거에서 집권 내각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프랑스는 대독 강경대응을 포기'''하며 라인란트 재무장을 용인하고 말았다. 그래도 마지막 발악으로 [[국제연맹]]에 독일에 대한 [[경제제재]]를 제소했으나 이에 찬성한 나라는 오직 [[1935년]] 체결된 프랑스-소련 상호원조조약을 지키려 했던 [[소련]] 뿐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독일에게 경제 제재를 가한다는건 아직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못한 자국 경제에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주저했다. 다만, 소련 역시 한달 뒤인 [[1936년]] [[4월]]에 독일 - 소련간의 무역협정이 체결된 점에서 보듯 어디까지나 프랑스에 대한 외교적인 제스처에 불과했고, 실제로 독일을 적대시할 생각은 없었다. [[영국]]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육군도 부족하고, 전쟁 준비도 안 되어 있던 영국으로서는 독일을 달래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으므로 '''일반적으로는 독일의 라인란트 재무장을 인정하는 방향이었다.''' 당시 영국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은 프랑스가 독일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을 반대했고, 프랑스 대사를 소환해 군사적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영국 총리 [[스탠리 볼드윈]]은 의회에서 영국 여론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전쟁장관 더프 쿠퍼는 독일 대사를 소환해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다면 영국이 참전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독일 땅인 라인란트에 군대를 보내는것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영국은 독일의 라인라트 재무장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영국 역시 프랑스처럼 전쟁을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독일에 유화적인 태도는 [[오스트리아 병합]]과 [[뮌헨 협정]]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이탈리아 왕국]]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1935년]] [[국제연맹]]에서 이탈리아에 대한 경제제재(형식적인 수준이었다)를 가하기로 결의한 것에 대한 앙심이 남아있어 [[무솔리니]]가 직접 라인란트 재무장을 인정한다는 연설까지 했다. [[벨기에]]는 1차 대전 이후 오랜 중립 정책을 포기하고 프랑스와 군사 동맹을 맺어 대독전선에서 공동대응을 하고 있었으나 프랑스가 라인란트 재무장을 용인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프랑스를 더는 믿을 수 없겠다 싶어 군사 동맹을 파기하고 중립 정책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독일은 1923년 프랑스와 함께 루르 공업지대를 불법 점령한 벨기에에 어떻게든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940년 5월 10일 중립선언은 상큼히 씹으며 벨기에를 때렸다. [[폴란드]]는 [[1921년]]에 체결된 프랑스-폴란드 방위 협정을 준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라인란트는 독일 땅이었으니 방위협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천명했고, [[국제연맹]]에서 독일에 대한 경제제재 투표에서 기권했다. 훗날 두들겨 맞는 폴란드지만 1935년 당시에는 기나긴 무역분쟁을 종결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히틀러에 대해 폴란드는 위험요소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의 선택은 1939년 9월1일 독일의 대침공을 불러일으키는 악수가 되었다. [[미국]]은 [[먼로 독트린]] 정책으로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관심도 없었고 설사 관심이 있었다해도 대공황 여파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전혀 행동할수 없었다. 이렇게 이해관계에 있던 모든 나라들이 라인란트 재무장을 인정했으며, 히틀러의 도박은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